기독교강요
칼빈의 기독교강요 요약 100 경구
출처: 기독교 강요(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저자: 칼빈(John Calvin)
영역자: Henry Beveridge
One Hundred Aphorisms
100 경구(警句)
1. The true wisdom of man consists in the knowledge of God the Creator and Redeemer.
인간의 진정한 지혜는 창조주이시고 구속주이신 하나님을 아는 데 있다.
2. This knowledge is naturally implanted in us, and the end of it ought to be the worship of God rightly performed, or reverence for the Deity accompanied by fear and love.
이 지식은 본래 우리 안에 심겨져 있고, 이 지식의 목적은 바른 하나님 경배, 혹은 두려움과 사랑으로 행하는 하나님 경외이어야 한다.
3. But this seed is corrupted by ignorance, whence arises superstitious worship; and by wickedness, whence arise slavish dread and hatred of the Deity.
그러나 이 씨앗(지식)은 무지(無知)와 악함으로 부패하였는데, 무지로부터 미신적 예배가, 악함으로부터 하나님께 대한 노예적 두려움과 증오가 나왔다.
4. It is also from another source that it is derived - namely, from the structure of the whole world, and from the Holy Scriptures.
이 지식은 또한 다른 출처, 곧 세상의 전(全) 체계와 성경으로부터도 얻어진다.
5. This structure teaches us what is the goodness, power, justice, and wisdom of God in creating all things in heaven and earth, and in preserving them by ordinary and extraordinary government, by which his Providence is more clearly made known. It teaches also what are our wants, that we may learn to place our confidence in the goodness, power, and wisdom of God, - to obey his commandments, - to flee to him in adversity, - and to offer thanksgiving to him for the gifts which we enjoy.
이 체계는 천지의 만물을 창조하심과, 일상적 그리고 특별한 통치로 그것들을 보존하심에 있어 하나님의 선함, 능력, 공의, 지혜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그로 인해 그분의 섭리가 더 분명히 우리에게 알려진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선함, 능력, 지혜를 신뢰하는 것을 배워 하나님의 계명들에 순종하고, 고난 중에 그분을 찾고, 우리가 누리는 선물들로 인해 그분께 감사드리도록, 우리의 결핍들을 가르친다.
6. By the Holy Scriptures, also, God the Creator is known. We ought to consider what these Scriptures are; that they are true, and have proceeded from the Spirit of God; which is proved by the testimony of the Holy Spirit, by the efficacy and antiquity of the Scriptures, by the certainty of the Prophecies, by the miraculous preservation of the Law, by the calling and writings of the Apostles, by the consent of the Church, and by the steadfastness of the martyrs, whence it is evident that all the principles of piety are overthrown by those fanatics who, laying aside the Scripture, fly to revelations.
또한 성경을 통해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안다. 우리는 성경이 어떤 책인지 알아야 한다. 즉, 그것은 진리를 말하고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유래했다. 이 사실은 성령의 증거로, 성경의 유용성과 오랜 존속으로, 예언자들의 확신으로, 율법의 놀라운 보존으로, 사도들의 소명과 그들의 글들로, 교회의 동의로, 순교자들의 확고한 신념으로 증명되었다. 이로써 분명한 사실은 성경을 제쳐두고 계시를 좇는 광신자들이 모든 경건의 원리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7. Next, what they teach; or, what is the nature of God in himself, and in the creation and government of all things.
다음으로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 자신에 있어서 그리고 만물의 창조와 통치에 있어서 그분의 본성이 어떠한지이다.
8. The nature of God in himself is infinite, invisible, eternal, almighty; whence it follows that they are mistaken who ascribe to God a visible form. In his one essence there are three persons, 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Spirit.
하나님 자신의 본성은 무한함, 보이지 않으심, 영원함, 전능함이고, 이로써 내려지는 결론은 하나님께 눈에 보이는 형상이 있다 하는 자들이 그릇되다는 것이다. 단 하나의 그분의 존재(실체) 안에는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세 위격들이 계신다.
9. In the creation of all things there are chiefly considered, 1. Heavenly and spiritual substances, that is, angels, of which some are good and the protectors of the godly, while others are bad, not by creation, but by corruption; 2. Earthly substances, and particularly man, whose perfection is displayed in soul and in body.
만물의 창조와 관련하여 주로 고찰된 것: 1. 천상적(天上的) 그리고 영적(靈的) 실체들, 즉 천사들. 이들 중 일부는 선한 존재들이고 경건한 자들의 보호자들이지만, 일부는, 창조로 인해서가 아니라 타락에 의해 악한 존재들이다. 2. 이 땅의 실체들, 그리고 특히 인간. 인간의 완전함은 영과 몸에 잘 나타나 있다.
10. In the government of all things the nature of God is manifested. Now his government is, in one respect, universal, by which he directs all the creatures according to the properties which he bestowed on each when he created them.
하나님의 본성이 만물의 통치 가운데 나타나있다. 한편으로, 그분의 통치는 보편적인데, 그 통치로 그분께서는,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하실 때 그것들에게 주신 특성들에 따라 그 모든 것들 지배하신다.
11. In another respect, it is special; which appears in regard to contingent events, so that if any person is visited either by adversity or by any prosperous result, he ought to ascribe it wholly to God; and with respect to those things which act according to a fixed law of nature, though their peculiar properties were naturally bestowed on them, still they exert their power only so far as they are directed by the immediate hand of God.
다른 한편, 그분의 통치는 특수한데, 그것은 우연한 사건들에 등장한다. 그리하여 만약 어떤 자가 역경을 당하거나 번창할 경우, 그는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돌려야 하고, 확고한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들의 경우 그것들의 특별한 특성들이 본래 그것들에게 주어졌다할지라도, 그것들이 하나님의 손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는 한에 있어서만 자신들의 힘을 쓰게 된다.
12. It is viewed also with respect to time past and future. Past, that we may learn that all things happen by the appointment of God, who acts either by means, or without means, or contrary to means; so that everything which happens yields good to the godly and evil to the wicked. Future, to which belong human deliberations, and which shows that we ought to employ lawful means; since that Providence on which we rely furnishes its own means.
과거와 미래의 시간과 관련해서도 그 통치가 고찰됨. 과거가 고찰됨은,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정하심에 의해서 발생함을 우리가 배우기 위함이다. 그분께서는 수단을 통해서, 혹은 수단 없이, 혹은 수단과 반대되게 행동하신다. 그리하여 발생하는 모든 일들은 경건한 자들에게는 선(善)을 악한 자들에게는 악(惡)을 일으킨다. 미래의 경우, 이 미래에 인간의 의도가 속해 있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적법한 수단들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우리가 의존(依存)하고 있는 하나님의 섭리가 그것 자체의 수단들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13. Lastly, by attending to the advantage which the godly derive from it. For we know certainly, 1. That God takes care of the whole human race, but especially of his Church. 2. That God governs all things by his will, and regulates them by his wisdom. 3. That he has most abundant power of doing good; for in his hand are heaven and earth, all creatures are subject to his sway, the godly rest on his protection, and the power of hell is restrained by his authority. That nothing happens by chance, though the causes may be concealed, but by the will of God; by his secret will which we are unable to explore, but adore with reverence, and by his will which is conveyed to us in the Law and in the Gospel.
마지막으로, 경건한 자들이 하나님의 통치로부터 얻는 이익을 주목함으로 그 통치가 고찰됨. 우리가 확실히 아는 바는, 1. 하나님께서 전(全) 인류를 돌보시지만 특히 그분의 교회를 돌보신다. 2.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의지(意志)로 만물을 다스리시고, 그분의 지혜로 그것들을 조종하신다. 3. 그분께서는 선을 행하시는 데 가장 많은 능력을 소유하고 계신다. 즉 천지가 그분의 손 안에 있고, 모든 피조물들이 그분의 통치의 지배하에 있으며, 경건한 자들이 그분의 보호에 희망을 두고, 지옥의 힘이 그분의 권세로 제한된다. 원인들이 숨겨졌을지라도 모든 것들이 우연히 일어나지 않고 하나님의 의지(意志)에 의해, 즉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경외함으로 숭상하는 그분의 비밀스런 의지(意志)에 의해, 그리고 율법과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 그분의 의지(意志)에 의해, 일어난다.
14. The knowledge of God the Redeemer is obtained from the fall of man, and from the material cause of redemption.
구속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인간의 타락과 구속의 질료인(質料因)으로부터 얻어진다.
>>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운동의 4원인(four causes of movement)」
1. material cause 질료인 2. formal cause 형상인 3. efficient cause 동력인 4. final cause 목적인 <<
15. In the fall of man, we must consider what he ought to be, and what he may be.
인간의 타락에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인간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와 ‘인간이 무엇인가’이다.
16. For he was created after the image of God; that is, he was made a partaker of the divine Wisdom, Righteousness, and Holiness, and, being thus perfect in soul and in body, was bound to render to God a perfect obedience to his commandments.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하나님의 지혜, 의(義), 거룩을 함께 나누는 자로 지음 받았고, 이처럼 몸과 영이 완전하여서 하나님께 그분의 계명들을 온전히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도록 되어 있었다.
17. The immediate causes of the fall were - Satan, the Serpent, Eve, the forbidden fruit; the remote causes were - unbelief, ambition, ingratitude, obstinacy. Hence followed the obliteration of the image of God in man, who became unbelieving, unrighteous, liable to death.
인간 타락의 직접적 원인들은 사탄, 뱀, 이브, 금단의 열매였고, 간접적 원인들은 불신앙, 야망, 배은망덕, 완고함이었다. 그리하여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이 지워졌고, 인간은 불신앙적이고 불의하게 되었고, 죽을 인생이 되었다.
18. We must now see what he may be, in respect both of soul and of body. The understanding of the soul in divine things, that is, in the knowledge and true worship of God, is blinder than a mole; good works it can neither contrive nor perform. In human affairs, as in the liberal and mechanical arts, it is exceedingly blind and variable. Now the will, so far as regards divine things, chooses only what is evil. So far as regards lower and human affairs, it is uncertain, wandering, and not wholly at its own disposal.
우리는 영과 육체의 차원에서 인간이 무엇인가 생각해야 한다. 거룩한 사항들, 즉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참된 경배에 있어서 인간의 영(靈)의 이해력은 두더지보다 더 눈이 멀어 있고, 그것은 선한 일들을 생각해낼 수도, 행할 수도 없다. 인문학과 기계학의 경우처럼, 인간의 일들에 있어서 그것(영의 이해력)은 매우 눈이 멀어 있고 변덕스럽다. 거룩한 일들이 고려하자면, 인간의 의지(意志)는 악한 것만을 선택한다. 더 낮은 차원의 인간적인 일들의 경우 그 의지는 확신이 없고, 방황하며, 온전히 자신의 지배하에 있지 않다.
19. The body follows the depraved appetites of the soul, is liable to many infirmities, and at length to death.
육체는 영의 부패한 욕망을 따르고, 수많은 질병들로 고생하고 마침내 죽게 된다.
20 Hence it follows that redemption for ruined man must be sought through Christ the Mediator; because the first adoption of a chosen people, the preservation of the Church, her deliverance from dangers, her recovery after dispersions, and the hope of the godly, always depended on the grace of the Mediator. Accordingly, the law was given, that it might keep their minds in suspense till the coming of Christ; which is evident from ceremonies, sacrifices, and washings, from the end of adoption, and from the law of the priesthood.
그리하여 내려지는 결론은 중보자 그리스도를 통한, 몰락한 인간들을 위한 구속(救贖)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맨 처음 선민(選民)으로 받아들이심, 교회 보존, 위험으로부터의 교회 구출, 흩어진 이후의 교회 회복, 경건한 자들의 소망이 항상 중보자의 은혜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율법이 주어져서 그들의 마음을 졸이게 했다. 이는 제의, 희생제사, 씻음에서, 선민으로 받아들이신 목적에서, 제사장 법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21. The material cause of redemption is Christ, in whom we must consider three things; 1. How he is exhibited to man; 2. How he is received; 3. How men are retained in his fellowship.
구원의 질료인(質料因)은 그리스도이시고, 그분 안에서 우리는 세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1. 어떻게 그분께서 사람과 만나시나, 2. 어떻게 그분께서 영접되시나, 3. 어떻게 인간이 그분과 교제를 유지하나.
22. Christ is exhibited to men by the Law and by the Gospel.
그리스도께서는 율법과 복음을 통해 인간들을 만나신다.
23. The Law is threefold: Ceremonial, Judicial, Moral. The use of the Ceremonial Law is repealed, its effect is perpetual. The Judicial or Political Law was peculiar to the Jews, and has been set aside, while that universal justice which is described in the Moral Law remains. The latter, or Moral Law, the object of which is to cherish and maintain godliness and righteousness, is perpetual, and is incumbent on all.
율법은 삼중(三重)적이다: 제의(祭儀)법, 국법(國法), 도덕법. 제의법의 용도는 폐지되었고, 그 결과는 영속적이다. 국법 혹은 정치법(政治法)은 유대인들에게 해당하고 이제는 치워졌으나, 도덕법에 들어 있는 보편적 정의는 살아남아 있다. 후자인 도덕법의 목적은 선과 의(義)를 품고 지키는 것인데, 이 도덕법은 영속적이고, 모든 자들에게 의무로 지워진다.
24. The use of the Moral Law is threefold. The first use shows our weakness, unrighteousness, and condemnation; not that we may despair, but that we flee to Christ. The second is, that those who are not moved by promises, may be urged by the terror of threatenings. The third is, that we may know what is the will of God; that we may consider it in order to obedience; that our minds may be strengthened for that purpose; and that we may be kept from falling.
도덕법은 세 용도로 사용된다. 첫째 용도는 우리의 약함, 불의, 정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절망케 하려 함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피하게 하려 함이다. 둘째는 약속들로 인해 감화를 받지 않는 자들을 위협으로 두렵게 하여 압박하는 것이다. 셋째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뭔지 알고, 그것을 숙고하여 순종하고, 우리의 마음이 그 목적을 향해 굳세어지고, 우리가 타락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25. The sum of the Law is contained in the Preface, and in the two Tables. In the Preface we observe, 1. The power of God, to constrain the people by the necessity of obedience; 2. A promise of grace, by which he declares himself to be the God of the Church; 3. A kind act, on the ground of which he charges the Jews with ingratitude, if they do not requite his goodness.
율법(십계명)의 요약은 서문과 두 목록에 기록되어 있다. 서문에서 우리는 1. 하나님의 권능을 보는데, 순종의 필요성을 들어 백성의 행동을 제약함이 그 목적이고, 2. 은혜가 약속됨을 보는데, 이로써 그분께서는 자신을 교회의 하나님으로 선언하시고, 3. 우호적 행동을 보는데, 이를 근거로 그분께서는, 유대인들이 그분의 선하심에 은혜로 갚지 않으면 그들이 배은망덕한 것이라 말씀하신다.
26. The first Table, which relates to the worship of God, consists of four commandments. 첫째 목록은 하나님 경배와 관련이 있고, 네 계명들로 이루어져 있다.
27. The design of the First Commandment is, that God alone may be exalted in his people. To God alone, therefore, we owe adoration, trust, invocation, thanksgiving.
제1계명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그분의 백성 가운데 높여지셔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그분께만 경배, 신뢰, 기도, 감사를 드려야 한다.
28. The design of the Second Commandment is, that God will not have his worship profaned by superstitious rites. It consists of two parts. The former restrains our licentious daring, that we may not subject God to our senses, or represent him under any visible shape. The latter forbids us to worship any images on religious grounds, and, therefore, proclaims his power, which he cannot suffer to be despised, - his jealousy, for he cannot bear a partner, - his vengeance on children's children, - his mercy to those who adore his majesty.
제2계명은 하나님께서 미신적 의식(儀式)들로 인해 그분께 드리는 예배가 불경스럽게 됨을 허용치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부분은 우리의 방자한 모험을 금하여, 하나님을 우리의 감각들에 종속시키거나 어떤 가시적 형태로 그분을 나타내지 못하게 한다. 둘째 부분은 우리가 종교적 목적으로 그 어떤 우상이라도 섬기는 것을 금하고, 그러므로 그분의 권능과(그분께서는 이 권능이 절대 경시됨을 허락지 않으심), 그분의 질투와(그분께서는 동료를 두시지 않으니까), 자손의 자손에게 가하는 그분의 보복, 그분의 주권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베풀어지는 그분의 자비를 선포한다.
29. The Third Commandment enjoins three things: 1. That whatever our mind conceives, or our tongue utters, may have a regard to the majesty of God; 2. That we may not rashly abuse his holy word and adorable mysteries for the purposes of ambition or avarice; 3. That we may not throw obloquy on his works, but may speak of them with commendations of his Wisdom, Long-suffering, Power, Goodness, Justice. With these is contrasted a threefold profanation of the name of God, by perjury, unnecessary oaths, and idolatrous rites; that is, when we substitute in the place of God saints, or creatures animate or inanimate.
제3계명은 세 가지를 명한다: 1. 우리가 생각하고 말할 때마다 하나님의 주권을 고려해야 한다. 2. 우리가 야심과 탐욕에 눈이 어두워 무모하게 하나님의 성호와 존귀한 신비를 오용하면 안 된다. 3. 우리는 그분의 일들을 비방하지 않고, 그 일들을 그분의 지혜, 오래 참으심, 능력, 선하심, 공의와 같은 말로 찬미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과 반대되게 하나님 성호를 더럽히는 세 가지가 있는데, 위증, 불필요한 맹세, 우상숭배 제의들이 바로 그것이다. 즉 우리가 하나님 자리에 성인(聖人)들 혹은 생물이나 무생물을 두는 것이 그러한 경우이다.
30. The design of the Fourth Commandment is, that, being dead to our own affections and works, we may mediate on the kingdom of God. Now there are three things here to be considered: 1. A spiritual rest, when believers abstain from their own works, that God may work in them; 2. That there may be a stated day for calling on the name of God, for hearing his word, and for performing religious rites; 3. That servants may have some remission from labour.
제4계명은, 우리 자신의 감정과 일에 대해서는 죽은 상태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세 가지가 고려된다: 1. 신자들이 자신들의 일을 삼가는 가운데, 영적 휴식을 취하여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서 일하시도록 한다. 2. 하나님의 성호를 부르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종교의식들을 행하는 공식일이 있도록 한다. 3. 종들이 일에서 놓임을 받는다.
31. The Second Table, which relates to the duties of charity towards our neighbour, contains the last Six Commandments. The design of the Fifth Commandment is, that, since God takes pleasure in the observance of his own ordinance, the degrees of dignity appointed by him must be held inviolable. We are therefore forbidden to take anything from the dignity of those who are above us, by contempt, obstinacy, or ingratitude, and we are commanded to pay them reverence, obedience, and gratitude.
둘째 목록은 우리 이웃에 대한 사랑의 의무와 관련되어 있고, 뒷부분의 여섯 계명들을 담고 있다. 제5계명은,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법이 준수되는 것을 기뻐하시므로 그분께서 정하신 위계질서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멸, 완고, 배은망덕을 행하여 우리보다 높은 자들의 권위를 훼손하면 안되고, 우리는 그들에게 존경, 복종, 감사로 그들을 대하도록 명을 받았다.
32. The design of the Sixth Commandment is, that, since God has bound mankind by a kind of unity, the safety of all ought to be considered by each person; whence it follows that we are forbidden to do violence to private individuals, and are commanded to exercise benevolence.
제6계명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하나되게 묶어놓으셨으므로 각각의 사람들은 모든 자들의 안전을 생각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로부터 내려지는 결론은 우리는 어느 개인에게 복수해서는 안되고, 선을 행하도록 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33. The design of the Seventh Commandment is, that, because God loves purity, we ought to put away from us all uncleanness. He therefore forbids adultery in mind, word, and deed.
제7계명은, 하나님께서 정결을 사랑하시므로 우리가 모든 부정함을 멀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마음, 말, 행위로 하는 간음을 금하신다.
34. The design of the Eighth Commandment is, that, since injustice is an abomination to God, he requires us to render to every man what is his own. Now men steal, either by violence, or by malicious imposture, or by craft, or by sycophancy, &c.
제8계명은, 불의가 하나님께 역겨운 것이므로 그분께서는 우리가 남의 것을 남의 것으로 인정하길 원하신다. 사람들은 폭력, 악랄한 사기행위, 잔꾀, 아첨 등으로 도둑질한다.
35. The design of the Ninth Commandment is, that, since God, who is truth, abhors falsehood, he forbids calumnies and false accusations, by which the name of our neighbour is injured, - and lies, by which any one suffers loss in his fortunes. On the other hand, he requires every one of us to defend the name and property of our neighbour by asserting the truth.
제9계명은, 진리이신 하나님께서 거짓을 미워하시므로, 우리 이웃의 명예를 훼손하는 비방과 악의적 고발, 그리고 다른 자의 재산 손실을 초래하는 거짓말을 금하신다는 내용이다. 한편 그분께서는 우리가 진실을 말하여 이웃의 명예와 재산을 지키도록 명하신다.
36. The design of the Tenth Commandment is, that, since God would have the whole soul pervaded by love, every desire averse to charity must be banished from our minds; and therefore every feeling which tends to the injury of another is forbidden.
제10계명은, 하나님께서 온 영혼이 사랑으로 채워지길 원하시므로, 사랑과 반대되는 모든 욕망들이 우리 마음에서 물러나길 원하시고, 그리하여 타인을 해하려는 모든 감정을 금하신다는 내용이다.
37. We have said that Christ is revealed to us by the Gospel. And, first, the agreement between the Gospel, or the New Testament, and the Old Testament is demonstrated: 1. Because the godly, under both dispensations, have had the same hope of immortality; 2. They have had the same covenant, founded not on the works of men, but on the mercy of God; 3. They have had the same Mediator between God and men - Christ.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드러나신다. 그리고 첫째로, 복음, 곧 신약과 구약의 일치가 다음과 같은 근거로 설명된다: 1. 두 시대의 경건한 자들이 같은 불멸(영생)이라는 소망을 가졌고, 2. 그들이 인간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자비에 근거한 동일한 언약(하나님과의 계약)을 받았고, 3. 그들이 동일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 그리스도를 두었다.
38. Next, five points of difference between the two dispensations are pointed out. 1. Under the law the heavenly inheritance was held out to them under earthly blessings; but under the Gospel our minds are led directly to mediate upon it. 2. The Old Testament, by means of figures, presented the image only, while the reality was absent; but the New Testament exhibits the present truth. 3. The former, in respect of the Law, was the ministry of condemnation and death; the latter, of righteousness and life. 4. The former is connected with bondage, which begets fear in the mind; the latter is connected with freedom, which produces confidence. 5. The word had been confined to the single nation of the Jews; but now it is preached to all nations.
다음으로 두 시대의 차이점 5 가지가 언급된다. 1. 율법을 통하여 하늘을 상속받는 것이 사람들에게 세상적 축복의 모양으로 제시되지만, 복음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이 그 상속에 직접 인도된다. 2. 구약이 상징들을 통하여 모습만을 보여줘서 실체는 부재(不在)하지만, 신약은 진리(실체)를 보여준다. 3. 구약은 율법적 차원을 고려하자면 정죄와 죽음의 사역이지만, 신약은 의(義)와 생명의 사역이다. 4. 구약은 마음에 두려움을 일으키는 속박(노예신분)과 관련되어 있지만, 신약은 신뢰감을 불어넣어 주는 자유와 관련되어 있다. 5. 하나님의 말씀이 전에는 유대민족 한 곳에만 주어졌으나, 이제는 모든 나라들에게 전파된다.
39. The sum of evangelical doctrine is, to teach, 1. What Christ is; 2. Why he was sent; 3. In what manner he accomplished the work of redemption.
복음적 교리의 핵심은 1.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신가, 2. 왜 그분께서 보내심을 받으셨나, 3. 어떤 방식으로 그분께서 구속사역을 완수하셨나를 가르치는 것이다.
40. Christ is God and man: God, that he may bestow on his people righteousness, sanctification, and redemption; Man, because he had to pay the debt of man.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고 인간이시다. 그분께서 하나님이시어 그분의 백성에게 의(義)와 구속(救贖)을 주시고, 인간이시어 인간의 빚을 갚아주셨다.
41. He was sent to perform the office, 1. Of a Prophet, by preaching the truth, by fulfilling the prophecies, by teaching and doing the will of his Father; 2. Of a King, by governing the whole Church and every member of it, and by defending his people from every kind of adversaries; 3. Of a Priest, by offering his body as a sacrifice for sins, by reconciling God to us through his obedience, and by perpetual intercession for his people to the Father.
그분께서 보내심을 받은 것은 1. 진리를 가르치심으로, 예언을 성취하심으로, 그분의 아버지의 뜻을 가르치시고 행하심으로 선지자 직분을 수행코자 하심이고, 2. 온 교회와 교회의 온 성도들을 다스리심으로, 그분의 백성을 모든 고난에서 지키심으로 왕의 직분을 수행코자 하심이고, 3. 자신의 몸을 죄를 위한 희생제물로 드리심으로, 자신의 순종으로 하나님을 우리와 화해시키심으로, 자기 백성을 위해 성부 하나님께 영속적인 중보기도를 드리심으로 제사장 직분을 수행코자 하심이다.
42. He performed the office of a Redeemer by dying for our sins, by rising again for our justification, by opening heaven to us through his ascension, by sitting at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whence he will come to judge the quick and the dead; and, therefore, he procured for us the grace of God and salvation.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의 의(義)를 위해 다시 살아나심으로, 자신의 승천을 통해 우리에게 하늘을 여심으로, 성부 하나님 우편(이곳에 계셨다가 그분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임)에 앉아 계심으로 그분께서 구세주 직분을 수행하셨고,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확보해 놓으셨다.
43. We receive Christ the Redeemer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who unites us to Christ; and, therefore, he is called the Spirit of sanctification and adoption, the earnest and seal of our salvation, water, oil, a fountain, fire, the hand of God.
우리는 성령의 능력에 의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시고,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거룩케 하시고 양자가 되게 하시는 영(靈), 우리 구원의 참됨과 인장(印章), 물, 기름, 샘, 불, 하나님의 손으로 불리우신다.
44. Faith is the hand of the soul, which receives, through the same efficacy of the Holy Spirit, Christ offered to us in the Gospel.
믿음은 영혼의 손이고, 그 손은, 동일한 성령의 능력을 통해, 복음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그리스도를 붙잡는다.
45. The general office of faith is, to assent to the truth of God, whenever, whatever, and in what manner soever he speaks; but its peculiar office is, to behold the will of God in Christ, his mercy, the promises of grace, for the full conviction of which the Holy Spirit enlightens our minds and strengthens our hearts.
언제, 무엇을, 무슨 식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든, 일반적으로 믿음이 하는 일은 하나님의 진리에 동의하는 것이지만, 믿음의 특별 직무는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의 뜻, 그분의 자비, 약속된 은혜를 보는 것이다. 믿음이 충만한 확신을 갖게 하기 위해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조명하시고 우리 마음을 굳세게 하신다.
46. Faith, therefore, is a steady and certain knowledge of the divine kindness towards us, which is founded on a gracious promise through Christ, and is revealed to our minds and sealed on our hearts by the Holy Spirit.
그러므로 믿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의(善意)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실한 지식이고, 이 하나님의 선의는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로운 약속에 근거하고 성령에 의해 우리의 마음에 계시되고 우리의 마음에 날인되었다.
47. The effects of faith are four: 1. Repentance; 2. A Christian life; 3. Justification; 4. Prayer.
믿음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 1. 회개, 2. 기독교인의 삶, 3. 의인(義認), 4. 기도.
48. True repentance consists of two parts: 1. Mortification, which proceeds from the acknowledgment of sin, and a real perception of the divine displeasure; 2. Quickening, the fruits of which are - piety towards God, charity towards our neighbour, the hope of eternal life, holiness of life. With this true repentance is contrasted false repentance, the parts of which are, Contrition, Confession, and Satisfaction. The two former may be referred to true repentance, provided that there be contrition of heart on account of the acknowledgment of sin, and that it be not separated from the hope of forgiveness through Christ; and provided that the confession be either private to God alone, or made to the pastors of the Church willingly and for the purpose of consolation, not for the enumeration of offences, and for introducing a torture of the conscience; or public, which is made to the whole Church, or to one or many persons in presence of the whole Church. What was formerly called Ecclesiastical Satisfaction, that is, what was made for the edification of the Church on account of repentance and public confession of sins, was introduced as due to God by the Sophists; whence sprung the supplements of Indulgences in this world, and the fire of Purgatory after death. But that Contrition of the Sophists, and auricular Confession (as they call it), and the Satisfaction of actual performance, are opposed to the free forgiveness of sins. 참된 회개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1. 굴욕감. 이는 죄를 인정함에서 오고, 하나님께서 불쾌하심을 실제로 느끼는 것이다. 2. 마음을 되살림. 이것의 열매는 하나님께 대한 경건, 이웃에 대한 사랑, 영생의 소망, 거룩한 삶이다. 이 참된 회개와 대조되는 것이 거짓 회개이고, 여기에는 (카톨릭의) 참회, 고백(고해), 보속이 있다. (참회는 뉘우치는 것이고, 고해는 신부에게 죄를 자백하는 것이고, 보속은 신부가 정해준 대로 죄의 결과를 보상하는 것임. 여기에 더해지는 것이 Absolution(사면, 사죄선언)인데, 신부의 죄사함 선언임. 고해성사의 순서는 contrition 참회 -> confession 고백 -> absolution 사죄선언.역주.) 죄를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의 뉘우침이 있고 그 뉘우침이 그리스도를 통한 용서에 대한 소망과 분리되지 않을 경우에만, 그리고 죄의 고백이 사적으로 오직 하나께만, 혹은 죄를 열거할 목적이 아니라 위로를 얻기 위해, 그리고 양심의 가책이 있게 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교회 성직자들에게 행해지거나, 공적으로 전(全) 교회에게 혹은 온 교회가 보는 가운데 한 사람이나 많은 자들에게 행해진 경우에만, 참회와 고백이 참된 회개라 할 수 있다. 예전엔 교회적 보속이라 불리었던 것이, 즉 죄의 회개와 공개적 죄 고백을 이유로 교회의 교화를 위해 행해진 것이, 소피스트들에 의해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으로 소개되었고, 이로부터 이생에서는 면죄라는 추가물이, 사후에는 불과 연옥이라는 추가물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소피스트들이 말하는 참회와 (흔히들 말하는) 비밀참회와 행위보속은 대가없는 죄용서에 반(反)하는 것이다.
49. The two parts of a Christian life are laid down: 1. The love of righteousness ; that we may be holy, because God is holy, and because we are united to him, and are reckoned among his people; 2. That a rule may be prescribed to us, which does not permit us to wander in the course of righteousness, and that we may be conformed to Christ. A model of this is laid down to us, which we ought copy in or whole life. Next are mentioned the blessing of God, which it will argue extreme ingratitude if we do not requite.
기독교인의 삶의 두 부분이 언급됨: 1. 의(義)를 사랑함. 이는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고 우리가 그분과 연합되고 그분의 백성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해지기 위함이다. 2.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좇도록 우리에게 하나의 법(法)이 부여되기 위함인데, 이 법은 우리로 하여금 의(義)의 길을 감에 있어 방황치 않도록 해준다. 이것의 모델이 우리에게 제시되고, 그것을 우리는 모든 삶 가운데 실천해야 한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복(福)이 언급된다. 우리가 이 복을 갚지 않으면 극한 배은망덕이 될 것이다.
50. The sum of the Christian life is denial of ourselves.
기독교인의 삶의 핵심은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다.
51. The ends of this self-denial are four. 1. That we may devote ourselves to God as a living sacrifice. 2. That we may not seek our own things, but those which belong to God and to our neighbour. 3. That we may patiently bear the cross, the fruits of which are - acknowledgment of our weakness, the trial of our patience, correction of faults, more earnest prayer, more cheerful meditation on eternal life. 4. That we may know in what manner we ought to use the present life and its aids, for necessity and delight. Necessity demands that we possess all things as though we possessed them not; that we bear poverty with mildness, and abundance with moderation; that we know how to endure patiently fulness, and hunger, and want; that we pay regard to our neighbour, because we must give account of our stewardship; and that all things correspond to our calling. The delight of praising the kindness of God ought to be with us a stronger argument.
자기부인의 목적은 네 가지다. 1. 우리 자신을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기 위함. 2. 우리가 자신들의 것을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과 이웃의 일을 추구하기 위함. 3. 우리가 인내함으로 십자가를 지기 위함. 이로써 나타나는 열매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는 것, 인내심을 단련하는 것, 더욱 간절한 기도, 더욱 기쁜 맘으로 영생을 생각하는 것이다. 4. 궁핍을 채우고 기쁨을 맛봄에 있어서 우리가 이 땅의 생명과 그 보조물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함. 궁핍은 우리가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았지만 모든 것들을 다 소유하길 요구하고, 어떻게 풍요와 굶주림과 가난을 인내로 견뎌야 하는지 우리가 알기를 요구하고, 우리가 청지기의 책임이 있으므로 우리의 이웃을 돌보길 요구하며, 모든 것들이 우리의 소명과 일치함을 요구한다. 하나님의 은혜로우심을 찬양하는 기쁨이 우리의 더욱 강한 (행함의) 동기가 되어야 한다.
52. In considering Justification, which is the third effect of faith, the first thing that occurs is an explanation of the word. He is said to be justified who, in the judgment of God, is deemed righteous. He is justified by works, whose life is pure and blameless before God; and no such person ever existed except Christ. They are justified by faith who, shut out from the righteousness of works, receive the righteousness of Christ. Such are the elect of God.
믿음의 세 번째 결과인 의인(義認, 의롭다 인정받음)이 고려되고, 맨 먼저 단어 설명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때 의로운 자가 의롭다함 받았다 할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삶이 깨끗하고 흠이 없는 자가 행위로 의롭다함 받으나, 그리스도 외에 역사상 그런 자가 없었다. 행위로 받은 의인(義認)을 배제하고 그리스도의 의(義)를 받아들이는 자들이 믿음으로 의롭다함 받는다. 그러한 자들이 하나님의 선민(選民)이다.
53. Hence follows the strongest consolation; for instead of a severe Judge, we have a most merciful Father. Justified in Christ, and having peace, trusting to his power, we aim at holiness.
그리하여 가장 큰 위로가 뒤따른다. 왜냐하면 우리가 엄한 재판관 대신 가장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함 받고, 평화를 얻고, 그분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여, 우리의 목표는 거룩이 되었다.
54. Next follows Christian liberty, consisting of three parts. 1. That the consciences of believers may rise above the Law, and may forget the whole righteousness of the Law. 2. That the conscience, free from the yoke of the Law, may cheerfully obey the will of God. 3. That they may not be bound by any religious scruples before God about things indifferent. But here we must avoid two precipices. 1. That we do not abuse the gifts of God. 2. That we avoid giving and taking offense.
다음으로 기독교인의 자유가 기록되었는데, 이것은 세 부분으로 되어있다. 1. 이는 신자들의 양심이 율법을 넘어서고, 모든 율법의 의(義)를 잊기 위함이다. 2. 율법의 멍에로부터 자유로운 양심이 기쁜 맘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함이다. 3. 신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시시한 문제들을 가지고 그 어떤 신앙적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위험을 피해야 한다. 1. 우리는 하나님의 은사들을 오용하면 안 된다. 2. 우리는 남 때문에 실족하거나 남을 실족케 하면 안 된다.
55. The fourth effect of faith is Prayer; in which are considered its fruits, laws, faults, and petitions.
믿음의 다섯 번째 결과는 기도이다. 여기서는 기도의 열매들, 법들, 오류들과 탄원들이 나온다.
56. The fruit of prayer is fivefold. 1. When we are accustomed to flee to God, our heart is inflamed with a stronger desire to seek, love, and adore him. 2. Our heart is not a prey to any wicked desire, of which we would be ashamed to make God our witness. 3. We receive his benefits with thanksgiving. 4. Having obtained a gift, we more earnestly meditate on the goodness of God. 5. Experience confirms to us the Goodness, Providence, and Truth of God.
기도의 열매는 다섯 가지이다. 1. 우리가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 익숙해지면 우리의 마음은 그분을 찾고, 사랑하고, 경배하는 열망으로 더욱 불타오르게 된다. 2. 우리의 마음은 악한 욕망의 먹이감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을 그런 악한 욕망에 대한 증인이 되시게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3. 우리는 감사함으로 그분의 은혜들을 받는다. 4. 은혜를 받은 후 우리는 더욱 깊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생각한다. 5. 경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하심, 섭리, 진리를 확증해준다.
57. The laws are Four. 1. That we should have our heart framed as becomes those who enter into converse with God; and therefore the lifting up of the hands, the raising of the heart, and perseverance, are recommended. 2. That we should feel our wants. 3. That we should divest ourselves of every thought of our own glory, giving the whole glory to God. 4. That while we are prostrated amidst overwhelming evils, we should be animated by the sure hope of succeeding, since we rely on the command and promise of God.
네 가지 법들이 있다. 1. 우리에게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 자들에 걸맞은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손을 들고, 마음을 집중시키고, 인내하는 것이 필요하다. 2.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3.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우리는 그 어떠한 우리 자신의 영광도 생각하면 안 된다. 4. 넘치는 죄악 가운데 우리가 쓰러져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을 신뢰하므로, 반드시 성공한다는 소망을 갖고 기운을 내야 한다.
58. They err who call on the Saints that are placed beyond this life. 1. Because Scripture teaches that prayer ought to be offered to God alone, who alone knows what is necessary for us. He chooses to be present, because he has promised. He can do so, for he is Almighty. 2. Because he requires that he be addressed in faith, which rests on his word and promise. 3. Because faith is corrupted as soon as it departs from this rule. But in calling on the saints there is no word, no promise; and therefore there is no faith; nor can the saints themselves either hear or assist.
죽은 성인(聖人)들에게 청하는 자들은 그릇되다. 1. 이는 성경이, 홀로 우리의 필요한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만 기도하라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약속하신대로 기도하는 자들에게 나타나신다. 그분께서 전능한 분이시기에 그게 가능하다. 2.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그분의 말씀과 약속에 근거한 믿음 가운데 그분께 아뢰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3. 이 법칙에서 벗어나자마자 믿음이 부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인들에게 아뢰는 경우에는 말씀도, 약속도 없고, 그러므로 믿음도 없다. 또한 성인들 자신들은 듣거나 돕지 못한다.
59. The summary of prayer, which has been delivered to us by Christ the Lord, is contained in a Preface and two Tables.
주(主)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주기도문)의 핵심은 서문과 두 목록들에서 볼 수 있다.
60. In the Preface, the Goodness of God is conspicuous, for he is called our Father. It follows that we are his children, and that to seek supplies from any other quarter would be to charge God either with poverty or with cruelty; that sins ought not to hinder us from humbly imploring mercy; and that a feeling of brotherly love ought to exist amongst us. The power of God is likewise conspicuous in this Preface, for he is in Heaven. Hence we infer that God is present everywhere, and that when we seek him, we ought to rise above perceptions of the body and the soul; that he is far beyond all risk of change or corruption; that he holds the whole universe in his grasp, and governs it by his power.
서문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로 칭해지시는 것을 볼 때, 여기서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강조된다. 이로써 내려지는 결론은 우리가 그분의 자녀들이라는 것과, 그분말고 다른 자에게서 필요한 것을 구하는 행위는 그분을 빈곤하고 잔인한 분이라 비난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에게 죄가 있다고 우리가 겸손히 자비를 간청하는 것을 그만 두어서는 안되고, 우리 가운데 형제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서문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강조된다. 그분께서 하늘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께서 어디에나 계시고 우리가 그분을 찾을 때 우리가 영과 육의 인식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과, 그분께서 모든 변화나 부패의 위험에서 벗어나 계신다는 것과, 그분께서 삼라만상을 붙잡고 그분의 능력으로 다스리신다는 것을 추론합니다.
61. The First Table is entirely devoted to the glory of God, and contains Three petitions. 1. That the name of God, that is, his power, goodness, wisdom, justice, and truth, may be hallowed; that is, that men may neither speak nor think of God but with the deepest veneration. 2. That God may correct, by the agency of his Spirit, all the depraved lusts of the flesh; may bring all our thoughts into obedience to his authority; may protect his children; and may defeat the attempts of the wicked. The use of this petition is threefold. (1). It withdraws us from the corruptions of the world. (2). It inflames us with the desire of mortifying the flesh. (3). It animates us to endure the cross. 3. The Third petition relates not to the secret will of God, but to that which is made known by the Scriptures, and to which voluntary obedience is the counterpart.
첫째 목록은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고 있고, 세 청원들이 있다. 1. 하나님의 성호, 즉 그분의 능력, 선, 지혜, 공의, 진리가 높여지기를, 곧 사람이 오직 깊은 경외심을 갖고 그분에 대해 말하거나 생각하게 되기를 청원. 2.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육체의 타락한 욕망들을 고치시고, 우리의 모든 생각이 그분의 권위에 복종케 하시고, 그분의 자녀들을 보호하시고, 악한 자들의 시도들을 물리쳐주시기를 청원. 이 청원의 용도는 세 가지이다. (1). 그것은 세상의 부패로부터 우리를 건져낸다. (2) 그것은 육체를 죽이려는 갈망이 우리에게 일게 한다. (3). 그것은 십자가를 지려는 마음이 우리에게 생기게 한다. 3. 셋째 청원은, 비밀스런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 알려지고 자발적 복종으로 따라야 할 하나님의 뜻과 관련되어 있다.
62. The Second Table contains the Three remaining petitions, which relate to ourselves and our neighbours. 1. It asks everything which the body needs in this sublunary state; for we commit ourselves to the care and providence of God, that he may feed, foster, and preserve us. 2. We ask those things which contribute to the spiritual life, namely, the forgiveness of sins, which implies satisfaction, and to which is added a condition, that when we have been offended by deed or by word, we nevertheless forgive them their offences against us. 3. We ask deliverance from temptations, or, that we may be furnished with armour and defended by the Divine protection, that we may be able to obtain the victory. Temptations differ in their cause, for God, Satan, the world, and the flesh tempt; in their matter, for we are tempted, on the right hand, in respect of riches, honours, beauty, &c., and on the left hand, in respect of poverty, contempt, and afflictions: and in their end, for God tempts the godly for good, but Satan, the flesh, and the world, tempt them for evil.
두 번째 목록은 나머지 세 청원들을 담고 있으며, 그것들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이웃들과 관련되어 있다. 1. 그것은 몸이 이 땅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달라고 한다. 우리는 자신들을 하나님의 보호와 섭리에 맡겨 그분께서 우리를 먹이시고, 기르시고, 보존하시도록 한다. 2. 우리는 영적 생활, 곧 죄용서에 기여하는 것들을 달라고 한다. 이 죄용서는 배상(속죄)을 의미하고, 여기에 더해지는 조건은, 우리가 사람들의 행위나 말로 상처를 받았을 때 그들의 죄를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3. 우리는 시험들로부터 구원해달라 한다. 즉 우리가 승리를 쟁취하도록 무장되고 성령의 보호로 방어되도록 구한다. 하나님, 사탄, 세상, 육체가 시험하므로 시험들은 원인이 제각각 다르고, 또 질료가 제각각 다른데, 그 이유는 우리가 한편으론 부, 명예, 아름다움 등으로 인해 시험받거나, 다른 한편으론 빈곤, 경멸, 고통으로 시험을 받기 때문이며, 또한 시험들의 목적이 제각각 다른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자들을 선한 목적으로 시험하시지만 사탄과 육체와 세상은 그들을 악한 목적으로 시험하기 때문이다.
63. Those Four effects of faith bring us to the certainty of election, and of the final resurrection.
이 믿음의 네 결과들은 우리에게 선택받은 확신과 최후의 부활의 확신을 준다.
64. The causes of election are these. The efficient cause is - the free mercy of God, which we ought to acknowledge with humility and thanksgiving. The material cause is - Christ, the well-beloved Son. The final cause is - that, being assured of our salvation, because we are God's people, we may glorify him both in this life and in the life which is to come, to all eternity. The effects are, in respect either of many persons, or of a single individual; and that by electing some, and justly reprobating others. The elect are called by the preaching of the word and the illumination of the Holy Spirit, are justified, and sanctified, that they may at length be glorified.
하나님의 선택의 원인들은 바로 이것들이다. 동력인(動力因)은 거저 베푸는 하나님의 자비인데, 이것을 우리는 겸손과 감사함으로 인정해야 한다. 질료인(質料因)은 그리스도,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시다. 목적인(目的因)은, 우리가 자신들의 구원을 확신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이 땅에서의 삶과 그 이후의 삶에서 그리고 영원토록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이 원인들의 결과들은 다수의 차원과 개인의 차원이 있는데, 일부를 선택하심과 정당하게 나머지 사람들을 버리심으로 그 결과가 나타난다. 선택된 자들은 말씀 설파와 성령의 조명으로 부름받고, 결국은 영화롭게 되도록 의롭다함 받고 성화(聖化) 된다.
65. The final resurrection will take place. 1. Because on any other supposition we cannot be perfectly glorified. 2. Because Christ rose in our flesh. 3. Because God is Almighty.
마지막 부활이 일어날 것인데, 그 이유는 1. 그 외 다른 그 어떤 가설로도 우리가 완전히 영화롭게 될 수 없기 때문이고, 2.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육체 가운데 부활하셨기 때문이고, 3. 하나님께서 전능하시기 때문이다.
66. God keeps us united in the fellowship of Christ by means of ecclesiastical and Civil government.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와의 교제 가운데 교회와 정부의 통치를 수단으로 우리를 연합시킨다.
67. In Ecclesiastical government Three things are considered. 1. What is the Church? 2. How is it governed? 3. What is its power?
교회 통치에서는 세 가지가 고려된다. 1. 교회가 무엇인가? 2. 교회가 어떻게 다스려지나? 3. 교회의 권세는 무엇인가?
68. The Church is regarded in two points of view; as Invisible and Universal, which is the communion of saints; and as Visible and Particular. The Church is discerned by the pure preaching of the word, and by the lawful administration of the sacraments.
교회는 두 가지 관점, 즉 성도들의 교제(친교)인 불가시적, 보편적 교회와 가시적, 개별적 교회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교회는 순수한 말씀설파와 합법적 성례집전에 따라 그 진위가 드러난다.
69. As to the government of the Church, there are five points of inquiry. 1. Who rule? 2. What are they? 3. What is their calling? 4. What is their office? 5. What was the condition of the ancient Church?
교회 통치에 관하여 다섯 가지 질문이 있다. 1. 누가 다스리나? 2. 그들은 어떤 자들인가? 3. 그들의 소명은 무엇인가? 4. 그들의 직분은 무엇인가? 5. 초대교회는 어떠했나?
70. They that rule are not Angels, but Men. In this respect, God declares his condescension towards us: we have a most excellent training to humility and obedience, and it is singularly fitted to bind us to mutual charity.
다스리는 자들은 천사들이 아니라 인간들이다. 이 점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의 겸양을 보이신 것이고, 우리는 겸손과 순종을 위한 가장 우수한 훈련을 받게 되며, 그것이 특별히 서로간의 사랑으로 우리를 하나로 묶는 방향으로 맞춰진다.
71. These are Prophets, Apostles, Evangelists, whose office was temporary; Pastors and Teachers, whose office is of perpetual duration.
이들(다스리는 자들)은 선지자, 사도, 복음 전도자(순회 설교자)들이고, 이들의 직분은 일시적인 것이다. 또한 목사와 교사가 있는데, 이들의 직분은 지속적인 것이다.
72. Their calling is twofold; internal and external. The internal is from the Spirit of God. In the external there are Four things to be considered. 1. What sort of persons ought to be chosen? Men of sound doctrine and holy lives. 2. In what manner? With fasting and prayer. 3. By whom? Immediately, by God, as Prophets and Apostles. Mediately, with the direction of the word, by Bishops, by Elders, and by the people. 4. With what rite of ordination? By the laying on of hands, the use of which is threefold. 1. That the dignity of the ministry may be commended. 2. That he who is called may know that he is devoted to God. 3. That he may believe that the Holy Spirit will not desert this holy ministry.
이들의 소명은 이중적인데, 내적 소명과 외적 소명이 있다. 내적 소명은 성령으로 말미암는다. 외적 소명에는 네 가지 고려 사항이 있다. 1. 어떤 유(類)의 사람을 선발해야 하나? 온전한 교리를 믿고 거룩한 삶을 사는 자들을 선발한다. 2. 어떻게 선발하나? 금식기도를 한 후에 선발한다. 3. 누가 선발하나? 하나님께서 직접 선지자와 사도로 선발하신다. 성경 말씀에 따라 감독(노회장)들, 장로들, 성도들에 의해 간접적으로 선발된다. 4. 어떠한 임직식을 거행하나? 안수를 함으로 임직시키고, 안수는 세 가지 효과가 있다. 1. 직분의 존엄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2. 소명을 받은 자가 자신이 하나님께 바쳐졌음을 알게 한다. 3. 성령께서 이 거룩한 사역을 저버리지 않으실 것임을 믿게 한다.
73. The duty of Pastors in the Church is, to preach the Word, to administer the Sacraments, to exercise Discipline.
교회에서 목사의 임무는 말씀을 설교하고, 성례를 행하고, 권징하는 것이다.
74. The condition of the ancient Church was distributed into Presbyters, Elders, Deacons, who dispensed the funds of the Church to the Bishops, the Clergy, the poor, and for repairing churches.
초대 교회의 교회 형편은 장로(Presbyter, Elder)들과 집사들이 살폈는데, 이들은 교회 재물을 감독과 목사의 사례비와 가난한 자들의 구제 비용과 교회 수리비에 썼다.
75. The power of the Church is viewed in relation to Doctrine, legislation, and Jurisdiction.
교회의 권세는 교리, 입법(교회법), 사법(재판권)에 있다.
76. Doctrine respects the articles of faith, none of which must be laid down without the authority of the word of God, but all must be directed to the glory of God and the edification of the Church. It respects also the application of the articles, which must agree with the analogy of faith.
교리는 신앙의 조항들(사도신경?)을 따르고, 그 조항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없이 된 것이 하나도 없으며, 그 모든 조항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신앙인격 함양을 지향하고 있다. 교리는 또한 신앙의 조항들의 적용을 중시하고, 그 적용은 믿음의 분량(롬12:3)과 일치해야 한다.
77. Ecclesiastical laws, in precepts necessary to be observed, must be in accordance with the written word of God. In things indifferent, regard must be had to places, persons, times, with a due attention to order and decorum. Those constitutions ought to be avoided which have been laid down by pretended pastors instead of the pure worship of God, which bind the consciences by rigid necessity, which make void a commandment of God, which are useless and trifling, which oppress the consciences by their number, which lead to theatrical display, which are considered to be propitiatory sacrifices, and which are turned to the purposes of gain.
교회법은, 지켜야할 계율의 경우, 기록된 하나님 말씀과 일치해야 한다. 중요치 않은 사항들의 경우에는 적당한 질서와 예절 가운데 장소, 개인의 사정, 때를 고려해야 한다. 순수한 하나님 예배에 맞지 않고 거짓 목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강한 필요성으로 양심을 묶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효화시키는, 쓸데없고 시시한, 그것들의 (많은 조항의) 수(數)로 양심을 억압하는, 신앙의 과시를 지향하는, 속죄 희생제사를 연상시키는, 이익을 취할 목적이 있는 법들은 만들면 안 된다.
78. Jurisdiction is twofold. 1. That which belongs to the Clergy, which was treated of under the head of Provincial and General Synods. 2. That which is common to the Clergy and the people, the design of which is twofold, that scandals may be prevented, and that scandal which has arisen may be removed. The exercise of it consists in private and public admonitions, and like wise in excommunication, the object of which is threefold. 1. That the Church may not be blamed; 2. That the good may not be corrupted by intercourse with the bad; 3. That they who are excommunicated may be ashamed, and may begin to repent.
사법은 이중적이다. 1. 성직자에게 속한 사법이 있고, 이것은 노회와 총회의 장(長)이 주관한다. 2. 성직자와 평신도에 공통인 사법이 있고, 이것을 둔 것은 두 가지 이유, 즉 범죄 예방과 기존의 범죄를 제거하기 위함이다. 사법의 실행은 사적, 공적 훈계와 출교가 있는데, 이 출교의 목적은 세 가지이다. 1. 교회가 책망받지 않기 위함. 2. 선한 자가 악한 자와 교제하여 타락하지 않게 하기 위함. 3. 출교된 자들이 수치를 당해 회개케 하기 위함.
79. With regard to Times, Fasts are appointed, and Vows are made. The design of Fasts is that the flesh may be mortified, that we may be better prepared for prayer, and that they may be evidences of humility and obedience. They consist of Three things, the time, the quality, and the quantity of food. But here we must beware lest we rend our garments only, and not our heats, as hypocrites do, lest those actions be regarded as a meritorious performance, and lest they be too rigorously demanded as necessary to salvation.
때가 고려되어, 금식이 지정되고, 맹세가 행해진다. 금식은 육체가 죽고, 더욱 기도의 자세를 갖추고, 겸손과 순종의 태도를 보이기 위함이다. 금식은 세 가지, 곧 시간, 음식의 질, 음식의 양으로 규정된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위선자들처럼 우리의 마음이 아니라 옷만 찢지 않도록, 또 금식이 공로의 행위로 간주되지 않도록, 또 금식이 구원에 필요한 것이라며 강력히 요구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80. In Vows we must consider; 1. To whom the vow is made - namely, to God. Hence it follows that nothing must be attempted but what is approved by his word, which teaches us what is pleasing and what is displeasing to God. 2. Who it is that vows - namely, a man. We must, therefore, beware lest we disregard our liberty, or promise what is beyond our strength or inconsistent with our calling. 3. What is vowed. Here regard must be had to time; to the past, such as a vow of thanksgiving and repentance; to the future, that we may afterwards be more cautious, and may be stimulated by them to the performance of duty. Hence it is evident what opinion we ought to form respecting Popish vows.
맹세 때 다음의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 1. 누구에게 맹세하나. 하나님께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로부터 내려지는 결론은 그분의 말씀이 허용하는 것 외에 그 어떤 것도 시도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분의 말씀은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무엇이 불쾌하시게 만드는지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2. 누가 맹세하나. 인간이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소홀히 여기지 않도록 주의하고, 우리의 힘이 미치지 못하거나 우리의 소명과 어긋나는 것을 약속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3. 무엇을 맹세하나. 여기서는 시간을 고려해야 한다. 과거의 경우 감사와 회개의 맹세가 있고, 미래를 고려함은 후에 우리가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맹세 때문에 의무를 행하는 것이 촉구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천주교의 맹세에 대해 우리가 어떤 평가를 해야 하는지 분명해졌다.
81. In explaining the Sacraments, there are Three things to be considered. 1. What a sacrament is; - namely, an external sign, by which God seals on our consciences the promises of his good-will towards us, in order to sustain the weakness of our faith. We in our turn testify our piety towards him. 2. What things are necessary; - namely, the Sign, the Thing signified, the Promise, and the general Participation. 3. What is the number of them; - namely, Baptism and the Lord's Supper.
성례를 설명할 때 세 가지가 고려된다. 1. 성례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약한 믿음을 굳세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향한 그분의 선의(善意)에 대한 약속을 우리의 양심에 날인하는 수단인, 외적인 표지(標識)(상징)이다. 우리들 측에서는 그분께 향한 우리의 경건을 증거한다. 2. 어떤 것들이 필요하나? 상징(표지), 상징의 대상, 약속, 전반적 참여가 있어야 함. 성례의 수는? 세례와 성만찬.
82. The Sign in Baptism is water; the Thing Signified is the blood of Christ; the Promise is eternal life; the Communicants or Partakers are, adults, after making a confession of their faith, and likewise infants; for Baptism came in the place of Circumcision, and in both the mystery, promise, use, and efficacy, are the same. Forgiveness of sins also belongs to infants, and therefore it is likewise a sign of this forgiveness.
세례의 상징은 물이고, 상징되어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이고, 약속은 영생이며, 세례 받는 자 혹은 참여자는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한 성인(成人)들, 그리고 마찬가지로 유아들이다. 왜냐하면 세례는 할례의 대용이고, 이 둘의 경우 신비, 약속, 효용, 효과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유아들도 죄용서를 받아야 하고, 그러므로 마찬가지로 세례는 이 용서의 상징이다.
83. The end of Baptism is twofold. 1. To promote our faith towards God. For it is a sign of our washing by the blood of Christ, and of the mortification of our flesh, and the renewal of our souls in Christ. Besides, being united to Christ, we believe that we shall be partakers of all his blessings, and that we shall never fall under condemnation. 2. To serve as our confession before our neighbour; for it is a mark that we choose to be regarded as the people of God, and we testify that we profess the Christian religion, and that our desire is, that all the members of our body may proclaim the praise of God.
세례의 목적은 두 가지다. 1.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강화함.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우리의 씻음과, 우리의 육체의 죽음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영혼의 갱신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우리가 그분의 모든 복들을 함께 나눌 자들이 되고, 또 우리가 결코 정죄받지 않을 것을 믿는다. 2. 우리의 이웃에게 우리의 신앙고백으로서 작용함. 왜냐하면 세례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김받는 것을 선택했다는 표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기독교 신앙을 고백한다는 것과, 우리의 바램이 우리의 몸의 모든 지체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임을 증거하기 때문이다.
84. The Lord's Supper is a spiritual feast, by which we are preserved in that life into which God hath begotten us by his word.
성만찬은 영적 잔치이고, 이 성만찬에 의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실 때 주신 그 생명(영생) 안에 보존된다.
85. The design of the Lord's Supper is threefold. 1. To aid in confirming our faith towards God. 2. To serve as a confession before men. 3. To be an exhortation to charity.
성만찬은 세 가지 목적이 있다. 1.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확인함. 2. 사람들 앞에서 신앙 고백하는 의미. 3. 사랑하도록 권고함.
86. We must beware lest, by undervaluing the signs, we separate them too much from their mysteries, with which they are in some measure connected; and lest, on the other hand, by immoderately extolling them, we appear to obscure the mysteries themselves.
우리가 조심해야 할 바는, 상징들을 경시함으로 그것들을, 어떤 식으로든 그것들과 연결되어 있는 그것들의 신비들로부터 너무 분리시키면 안되고, 한편으론 그 상징들을 너무 높임으로 신비 그 자체를 가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87. The parts are two. 1. The spiritual truth in which the meaning is beheld, consists in the promises; the matter, or substance, is Christ dead and risen; and the effect is our redemption and justification. 2. The visible signs are, bread and wine.
두 부분들이 있음. 1. 의미를 담고 있는 영적 진리는 약속들로 이루어져 있고, 질료 즉 실체는 죽으셨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시고, 효과는 우리의 구속과 의인(義認)이다. 2. 가시적 상징들은 빵과 포도주이다.
88. With the Lord's Supper is contrasted the Popish Mass. 1. It offers insult and blasphemy to Christ. 2. It buries the cross of Christ. 3. It obliterates his death. 4. It robs us of the benefits which we obtain in Christ. 5. It destroys the Sacraments in which the memorial of his death was left.
성만찬과 대조되는 것이 천주교 미사다. 1. 미사는 그리스도께 모욕과 신성모독을 끼친다. 2.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매장한다. 3. 그것은 그분의 죽음을 말소한다. 4.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은혜들을 우리에게서 빼앗는다. 5. 그것은 그분의 죽음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는 성례들을 파괴한다.
89. The Sacraments, falsely so called, are enumerated, which are, Confirmation, Penitence, Extreme Unction, Orders [which gave rise to the (seven) less and the (three greater], and Marriage.
성례들이라고 잘못 칭해진 것들이 열거됨. 여기에는 견진성사, 고해성사, 종부성사, 신품성사[여기에는 (일곱) 소(小)성직과 (셋) 대(大)성직이 있음], 혼배성사가 있다.
90. Next comes Civil government, which belongs to the external regulation of manners.
다음으로 시민정부가 나온다. 시민정부는 외적 행동의 규범에 속한다.
91. Under this head are considered Magistrates, Laws, and the People.
이 주제에서는 행정관, 국법, 국민이 다뤄진다.
92. The magistrate is God's vicegerent, the father of his country, the guardian of the laws, the administrator of justice, the defender of the Church.
행정관은 하나님의 대리자요, 나라의 아비이고, 국법의 수호자요, 정의를 행하는 자요, 교회의 보호자이다.
93. By these names he is excited to the performance of duty. 1. That he may walk in holiness before God, and before men may maintain uprightness, prudence, temperance, harmlessness, and righteousness. 2. That by wonderful consolation it may smooth the difficulties of his office.
그러한 칭호들로 행정관을 자신의 의무를 생각하게 해야 한다. 1.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길을 가야하고, 사람들 앞에서 올곧고, 사려 깊고, 절제하며, 온유하며, 의롭게 행한다. 2. 그리하여 그것이 큰 위로로 그의 직책의 고됨을 완화시키게 한다.
94. The kinds of magistracy or Civil Government are, Monarchy, Aristocracy, Democracy.
정체(政體) 혹은 시민정부의 종류는 군주정치, 귀족정치, 민주정치가 있다.
95. As to laws, we must see what is their constitution in regard to God and to men: and what is their equity in regard to times, places, and nations.
법들을 살펴보자면,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과 관련하여 그것들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시대, 장소, 국가에 따라 그것들의 공평성은 어떠한지 알아야 한다.
96. The People owe to the Magistrate, 1. Reverence heartily rendered to him as God's ambassador. 2. Obedience, or compliance with edicts, or paying taxes, or undertaking public offices and burdens. 3. That love which will lead us to pray to God for his prosperity.
행정관에 대한 국민의 의무는, 1. 그를 하나님의 사자로 인정하여 표하는 진심어린 존경, 2. 복종, 혹은 명령에 순응, 혹은 납세, 혹은 (그 자가 부여하는) 공직과 의무를 맡는 것, 3. 그 자의 형통함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보이는 사랑.
97. We are enjoined to obey not only good magistrates, but all who possess authority, though they may exercise tyranny; for it was not without the authority of God that they were appointed to be princes.
우리는 선한 행정관들에게뿐만 아니라, 모든 권세자들에게, 그들이 폭정을 행할지라도, 복종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권위의 허락 없이 왕이 된 자가 없기 때문이다.
98. When tyrants reign, let us first remember our faults, which are chastised by such scourges; and, therefore, humility will restrain our impatience. Besides, it is not in our power to remedy these evils, and all that remains for us is to implore the assistance of the Lord, in whose hand are the hearts of men and the revolutions of kingdoms.
포악한 자가 정권을 잡으면 우리는 먼저 자신들의 죄가 없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한 죄가 학정이라는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겸허한 마음이 성급함을 막아준다. 더욱이 이러한 해악을 없애는 것이 우리의 권한(능력) 밖에 있고, 우리에게 남은 일은 사람들의 마음과 나라들의 혁명을 자신의 손에 쥐고 계신 주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뿐이다.
99. In Two ways God restrains the fury of tyrants; either by raising up from among their own subjects open avengers, who rid the people of their tyranny, or by employing for that purpose the rage of men whose thoughts and contrivances are totally different, thus overturing one tyranny by means of another.
하나님께서 두 가지 방법으로 포악한 군주의 혈기를 억누르신다. 하나는 폭군의 백성 중에서 공개적으로 원수갚는 자를 일으키시어, 그 자가 그 학정으로부터 백성을 구하는 것이고, 하나는 그러한 목적으로, 현재의 폭군과 완전히 생각과 계획이 다른 자를 사용하시어, 다른 군주를 수단으로 그 폭정을 종식시키심.
100. The obedience enjoined on subjects does not prevent the interference of any popular Magistrates whose office it is to restrain tyrants and to protect the liberty of the people. Our obedience to Magistrates ought to be such, that the obedience which we owe to the King of kings shall remain entire and unimpaired.
백성들에게 부과된 복종 명령은, 폭군을 저지하고 백성의 자유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행정관들의 개입(예를 들면 폭군을 폐위시키는 것)을 막지 않는다. 행정관들에 대한 우리의 복종은, 우리가 왕의 왕이신 분(그리스도)께 보여야 할 복종이 완전하고 훼손되지 않는 방향으로 되어야 한다. (즉 폭정을 행하는 왕의 백성인 자는, 폭군을 없애는 것이 그리스도의 뜻일 경우, 그 폭군의 말 대신 그 폭군을 대적하여 일어난 행정관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말임.)